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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하나에 낭만, 걸음 하나에 쉼

고흥 연홍도

다시 여행길이 열렸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떠날 준비를 한다. 그간의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기라도 하듯. 너도나도 계획을 세우기 바쁜 걸 보니 아마도 휴가철 전국 여행지는 사람들로 붐빌 모양새다. 올여름, 호들갑스럽지 않게 조용히, 한곳에 집중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걷기 좋은 섬이자 섬 자체가 미술관인 연홍도를 선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Text. 임혜경   Photo. 정우철

신양선착장에서 배로 3분 거리에 자리한 연홍도

익숙한 듯 낯선 고흥

전라남도 고흥군. 남도는 워낙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아 여행으로 자주 찾지만, 고흥에 머물러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남도여행 중 지나가는 길, 이정표에서 많이 봤던 곳이라 익숙한 정도였을 뿐. 서울 기준으로 먼 곳이라서 가려거든 큰 결심을 하고 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여행의 백미는 떠나는 것과 새로운 곳을 알아가는 재미가 아니던가. 이번 기회에 고흥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게나마 알아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흥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나로우주센터와 우주발사 전망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흥을 두고 ‘항공우주도시’라고 부른다. 나로우주센터와 가까운 우주발사 전망대는 해안절경이 뛰어나 고흥의 랜드마크가 된지 오래다. 인근에는 나로우주센터의 이름을 딴 나로우주해수욕장, 나로힐링캠핑장 등이 있어 한적한 여행을 즐기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푸른 백사장을 걸으며 햇볕이 뜨거워질 때쯤이면 그늘진 소나무 숲에서 쉬다가, 갯바위 낚시를 즐기며 하루를 온전히 여유롭게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엄마의 품을 표현한 벽화가 아기자기한 마을의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

연홍도 입구 선착장에 늘어선 조형물

소박한 일상의 풍경들이 담장마다 그려져 있는 걸 보면 연홍도가 왜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연홍도로

나로우주센터도, 그 옆에 바다도, 캠핑장도 다 좋았지만, 눈에 들어온 여행지가 있었다. 바로 연홍도다. ‘지붕 없는 미술관, 연홍도’라는 카피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고흥군청 기준으로 차로 30분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 섬 연홍도.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신양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배를 탄다고 해서 망설일 필요는 없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다’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찰나에 도착하니까. 시간으로 말하면 3분 남짓이다. 하나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배 시간. 하루에 7번 운행하는 배 시간을 잘 알아보고 움직여야 한다. 배 시간이 어긋나면 그 다음 배를 타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꽤 지루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배 안에서 표를 끊고, 잠시 앉았다가 일어나니 도착한 섬 연홍도.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뿔소라 조형물이 사람들을 반겨준다. 이 조형물을 기준으로 방향을 정해 섬 여행을 시작하면 된다.

바라보다가 걷다가

소박한 일상의 풍경들이 담장마다 그려져 있는 걸 보면 연홍도가 왜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걸을 때마다 보이는 벽화와 조형물 덕분에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정겹고 아기자기한 마을을 닮은 이정표를 따라가면 연홍도를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그래도 길이 헷갈린다면, 마을 초입에 자리한 안내소에서 지도를 받아도 되고, 오며 가며 만나게 되는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도 된다.

천천히 걷다가 마을 중간쯤 언덕에 자리한 정자에 앉아서 한참을 쉬어본다. 사방으로 보이는 바다가 일찍 찾아온 더위를 조금이나마 달래 준다. 정자에서 바라보면, 여러 섬이 보이는데 그 섬 중의 하나인 거금도와 맥이 이어져 있다 해서, 연홍도의 연을 ‘이을 연(連)’ 자로 바꿨다는 설도 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비단 거금도만 잇는 게 아니라 바다와 육지, 자연, 사람을 잇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정자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아르끝둘레길로 향했다. 대부분 연홍도에 오면 연홍미술관으로 먼저 향하지만, 연홍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아르끝둘레길 코스를 택했다. 마을에서부터 한적한 숲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걷기에도 무리가 없고 힘들지 않아서 추천하고 싶다. 30분 남짓 아르끝둘레길을 걷고 오면 다시 마을로 이어진다. 연홍도에는 아르끝둘레길 말고도 좀바끝둘레길, 연홍도담장바닥길이 있는데 여유가 있다면 3가지 산책길을 모두 둘러볼 것을 권한다. 섬 뒤편으로 보이는 완도의 금당도, 동쪽으로는 이순신 장군의 절이도 해전지와 몽돌해변, 갯벌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연홍도를 소개하는 익살스러운 벽화

미술작품으로 가득한 연홍미술관 앞마당

마을부터 한적한 숲으로 이어지는 아르끝둘레길

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

아르끝둘레길에서의 산책을 마치고 이제 연홍도의 중심, 연홍미술관으로 가볼 차례. 연홍미술관은 연홍도에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한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섬 안에 자리한 미술관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마치 “미술관이 곧 나타납니다”라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연홍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는 잘 갖춰진 조형물들이 여행자를 인도한다. 조형물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덧 ‘은빛 물고기’ 조형물이 앞에 보이는 미술관에 다다른다.

폐교를 개조해 2006년 문을 연 연홍미술관. 미술관답게 마당에는 여러 미술작품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수줍게 웃는 소녀의 벽화가 맞아주는 미술관 안에는 마침 지역 예술가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수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김태완, 박진희 작가의 <창문 넘어 시나브로 부는 바람>展이었는데, 이렇게 전시가 열리지 않을 때는 지역 예술인들의 체류 창작활동이나 단체 연수, 주민 생활복지 시설로 이용된다고 한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옆에 마련된 갤러리 카페에서 음료를 구매해 미술관 앞 쉼터에 잠시 머물렀다. 좀바끝둘레길로 향하기 전, 쉼이 필요했기에. 햇빛을 받아 빛나는 바다와 선선한 바람, 조용한 마을의 면면들에 또 다른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는 착각이 드는 걸 보니,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게 실감난다.

짧게는 두 시간, 많게는 네 시간. 연홍도를 들렀다 가는 사람들은 연홍도를 둘러보는 시간을 이렇게 한정짓곤 한다. 꽤 길게 섬에 머물다 온 입장으로는 섬을 돌아보는 시간을 정해놓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어느 한곳만 빠르게 돌아보고 오기에는 곳곳이 아름다웠고, 특유의 여유로움이 좋았으며,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누릴 수 있었던 연홍도에서의 모든 시간이 소중했으니까.

수줍게 미소짓는 소녀가 연홍미술관 입구를 지키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만드는 은빛 물고기

고즈넉한 연홍도의 풍경

Info

가는 길

신양선착장에서 하루 7번 운항하는 배를 타야 연홍도에 들어갈 수 있다. 하계(4월~9월)에는 오전 7시 55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항한다.

식당

연홍도 선착장 입구에 ‘스마트연홍센터’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카페, 특산품 판매는 물론 4D 해저체험관, 뮤비 컬처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