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천-장고 항로를 운항하는 가자섬으로호에서 여객들이 하선하고 있다
조선 시대 부산포에서 시작한 부산항은 개항과 산업화를 거치며 대한민국 성장의 동맥으로 이어져 왔다. 실제로 어릴적부터 부산항을 바라보며 자란 내게 바다는 국가를 움직이는 길이었다. 새벽이면 부둣가에 각국의 선원과 상인들이 모였고, 배가 드나들 때마다 항만은 살아 움직였다.
지난해 부산항은 2천488만 TEU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했다. 전국 물동량의 약 77%다. 세계 2위 환적항만이기도 하다. 산업구조와 물류 환경이 달라졌어도, 바닷길은 지금도 국가 기간 산업의 기반이다.
경제개발 시기 바다는 산업화의 주역이었다. 동시에 국민의 삶과 공동체를 지탱해온 생활 공간이기도 했다. 달라진 건 바다를 둘러싼 정책 환경이다. 기후변화와 해상교통량 증가, 자율운항선박 도입까지 바다를 둘러싼 조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바닷길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의 시험대가 됐다.
바닷길의 지속가능성은 거대한 항만과 물류망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섬 주민의 삶을 지탱하는 생활 항로 위에서 더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난다.
한국섬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3,390개의 섬이 있다. 이 가운데 사람이 거주하는 섬은 480개다. 유인 섬 인구수는 81만 3천4백여 명이다. 바다의 날이 지난 1996년 처음 제정됐을 때와 비교하면 여객선 운영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선박은 더 안전하고 빨라졌다. 이용 여건도 꾸준히 개선되었다. 특히 2015년 7월 여객선 안전관리가 공공부문으로 이관되며, 바닷길 안전은 개별 선사를 넘어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공공의 영역이 됐다. 그 사이 뱃길은 연간 1,260만 명의 이동을 책임지는 생활 교통망이 됐다.

'국가보조항로’인 ‘경남 통영~두미 항로’를 운항하는 ‘바다누리호’ 모습
그러나 여객선 항로는 줄어드는 추세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선사의 경영 악화 등이 겹치면서다. 현재 전국 99개 항로에 선박 150척이 운항 중이다. 그중 채산성이 낮아 정부가 운영 결손액을 지원하는 국가보조항로는 29개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해운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가보조항로를 공영항로로 전환하고, 공공기관이 위탁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항로를 국민 이동권과 국가 균형 발전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여객선 안전관리와 운항관리 체계를 더욱 촘촘히 다지고 있다. 국가보조항로 활성화와 섬 관광 지원, 교통약자 이동 편의 개선사업 등을 통해 바닷길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해양교통안전정보시스템(MTIS), 해양기상 정보 전달 서비스로 예방 중심 안전관리 체계도 더욱 고도화하는 중이다. 또한, 최대 3일 앞까지 여객선의 운항 가능성을 예측하는 ‘내일의 운항예보 플러스’는 장거리 항로 이용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바닷길 안전과 공공서비스, 지속가능성을 함께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올해로 제31회를 맞은 바다의 날 슬로건은 ‘부산에서 세계로, 바다에서 미래로’다. 어린 시절 부산항에서 바라본 바다는 이제 더 넓은 세계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바다의 미래는 먼 바다로 나가는 큰 배에만 있지 않다. 누군가의 일상을 지키는 생활 항로에도 있다.
바다 위 대중교통을 지킨다는 것은 국민의 삶을 끝까지 연결 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이다. 그리고 안전한 바닷길은 국가의 책임과 현장의 전문성, 공공의 투자가 쌓여 국민의 신뢰로 이어질 때 지속 가능해질 것이다.
바다의 날을 맞아 지속 가능한 바닷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커지길 기대한다. 공단도 국민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바닷길을 만드는 데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

안영철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