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부신 햇살 아래 청록빛 바다와 로컬의 정겨운 삶이 어우러진 이곳.
화사한 색채를 품은 골목길과 활기찬 통영 시민들의 터전을 거닐며 여름의 한복판을 만끽하고 싶다면, 답은 통영이다.
조선시대부터 통영의 관문이자 중심 항구 역할을 해온 강구안은 육지 쪽으로 둥글게 파고든 독특한 지형 덕분에 잔잔한 호수 같은 아늑함이 감돈다.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푸릇함을 머금은 남망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로 바다를 매끄럽게 가로지르는 강구안 보도교의 실루엣은 항구 도시 특유의 입체적이고 청량한 풍경을 완성한다.
여행자의 시선을 다시금 사로잡는 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조선 군선들이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상징하는 거북선과 판옥선 모형이 위용을 자랑한다. 군선 내부로 들어가면 당시 수군들의 치열했던 삶과 승리의 역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조선 군선 맞은 편으로 건널목을 지나면 통영 명물 충무김밥 거리가 펼쳐진다. 과거 배를 타던 어민들이 더운 여름날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김밥과 반찬을 따로 싸서 먹던 것에서 유래한 충무김밥. 꼬치에 꿴 오징어무침과 아삭한 섞박지, 그리고 김밥의 소박한 조화는 화려하진 않지만, 항구에 깃든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강구안의 정겨운 풍경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내음이 여행자의 걸음을 붙잡는다. 충무김밥 못지않게 오랜 시간 통영의 삶을 대변해 온 또 하나의 주인공, 바로 통영 꿀빵이다.
폭신한 밀가루 반죽 속에 팥앙금을 채우고 튀겨낸 도넛에 조청과 깨를 버무린 꿀빵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재미있게도 겉면의 끈적한 조청 코팅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빵이 변질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했던 어민들에게 이보다 든든하고 완벽한 보존식이 또 있었을까.
요즘은 원조의 팥앙금 외에도 유자, 고구마 등 다양한 소를 넣거나 소보로 같은 고명을 얹어 가게마다 개성 있는 맛을 뽐낸다. 덕분에 빵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 통영은 이미 매력적인 빵지순례 코스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손 맛을 비교해 보며 취향껏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꿀빵으로 당을 충전했다면, 이제 통영의 가장 뜨거운 숨결이 치솟는 곳으로 향할 차례다. 꿀빵 거리에서 안쪽으로 한 걸음만 접어들면,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함께 통영중앙활어시장이 나타난다. 여름철 보양식을 찾으려는 이들과 활기찬 상인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시장 전체가 거대한 축제장처럼 들썩인다.
수산 도시의 명성답게 대야마다 싱싱한 여름 제철 수산물들이 힘차게 꼬리를 치며 물보라를 일으킨다. 특히 여름 최고의 별미로 꼽히는 장어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전복이 가득해 보기만 해도 기운이 샘솟는 듯하다.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사투리로 흥정을 붙이는 사람들의 활력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로컬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실감한다.
푸른 하늘을 향해 맞닿아 있는 두 개의 언덕, 동피랑과 서피랑이 눈에 들어온다. ‘피랑’은 절벽을 뜻하는 통영의 순우리말 방언이다. 다양한 색채를 뽐내는 동피랑 벽화마을로 먼저 향해본다.
동피랑은 오랜 시간 주민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한때 철거 위기에 놓였었으나 문화예술을 통해 벽화마을로 재탄생했고, 지금까지도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면 빨래가 펄럭이는 담벼락 너머로 정겨운 벽화들이 고개를 내민다.
골목 구석구석의 작은 가게들도 벽화마을에 재미를 더한다. 통영 바다를 모티브로 한 소품을 파는 상점, 탁 트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식당과 카페 등 개성 있는 상점이 벽화와 어우러진다.
숨이 가빠질 때쯤 꼭대기 동포루에 다다른다. 성곽 너머로 강구안과 벽화마을의 주택들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다. 오르막의 수고로움을 잊게 할 만큼 호쾌한 풍경이다.
동피랑의 소담함을 뒤로 하고, 차로 5분 거리인 서피랑 공원으로 여정을 이어간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문학적 자취가 서린 이 곳은 비교적 한적해 시원한 나무 아래 그늘에서 사색을 즐기기 제격이다. 서피랑의 명물 ‘99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올라가면 통영의 마스코트 ‘동백이’ 조형물이 여행자를 반긴다. 감미로운 음악과 꽃이 한 아름 피어 있는 음악 정원,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온 서피랑 후박나무 보호수가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힌다.
언덕 꼭대기 서포루에 도착해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혀본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다. 붉은 석양이 푸른 바다를 물들이는 순간은 여행자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다. 낮 동안 뜨거웠던 대지가 시원한 밤바람에 기분 좋게 식어간다. 하루를 돌아보며 마음에 새로운 활력이 채워졌음을 느낀다. 반짝이는 여름 바다와 소박한 골목길이 건네는 응원이다. 올여름, 일상을 채울 에너지를 얻고 싶다면 통영의 푸른 바다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펄떡이는 활어처럼, 눈부신 여름 햇살처럼 우리 안의 생기를 다시 한번 깨워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