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1

100여 년의 세월, 그 안에 담긴 추억 순아커피

우리가 옛 추억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추억 속에 그때의 감정, 온도,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노래를 들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저마다의 추억을 먹고 산다.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한 제주 원도심. 그 사이에 어쩐지 이질감이 드는 순아커피는 1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민들의 추억 한 편을 지키며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여러 사람의 고민과
노력 끝에 순아커피는
2024년 제주특별자치도
우수건축자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순아라는 여성의 삶이 깃든 곳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 제주의 원도심. 도로 한편에 지은 지 한참 되어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띈다. 그 정체는 순아커피다. 멋있는 인테리어나, 화려한 디저트를 내세우는 보통의 카페들과 달리 소박한 느낌의 이 카페는 사실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다.
일본식 목조가옥의 형태로 만들어진 이곳은 한 제주 여성의 꿈이 담긴 공간이었다. 그 이름은 순아.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4·3사건과 6·25전쟁을 겪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타국에서 재일 한국인이라는 편견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제주인만의 억척스러움과 자생력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다. 그렇게 근면 절약하며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마음에는 항상 고향 제주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오겠다는 희망으로 지금의 순아커피 건물을 구매했다. 그녀는 훗날에도 제주에 올 때마다 좋은 호텔과 맛있는 음식을 마다하고, 이곳에 머무르며 그 옛날 먹었던 소박한 밥상을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역사적인 가치와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의 매력을
살려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탄생시켰다.

소중한 시간을 지켜내 탄생한 순아커피

자식들, 후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격려를 해주던 ‘순아’라는 여성은 지금 없지만,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순아커피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제주 원도심 거리의 터줏대감이 되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의 노력 덕분이다. ‘순아’라는 여성의 조카인 현재 순아커피의 주인장은 100년도 더 된 이 건물을 철거하고 요즘 스타일로 새로 지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다고. 하지만 한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설득으로 그 생각을 접게 되었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역사적인 가치와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의 매력을 살려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탄생시켰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초점을 맞췄고, 원래 골격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지금의 순아커피를 만든 것이다. 여러 사람의 고민과 노력 끝에 순아커피는 2024년 제주특별자치도 우수건축자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공 건축물이 아닌, 개인 건축물이 오른 건 처음이라고. 제주의 명소 중 하나인 ‘관덕정’ 조차도 1990년대에 이르러 문화재 복원사업으로 새롭게 지어졌는데, 그 사실을 고려한다면 단연 순아커피는 제주 원도심의 역사적 가치를 담은 유일한 건물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이곳에서는 언제나 편안하시기를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순아커피의 내부가 한눈에 담긴다. 소박한 1층 내부에는 주인이 손글씨로 쓴 큰어머니 ‘순아’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있고, 순아커피의 외관을 그린 그림과 직접 담근 차와 차를 내리는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순아커피의 메인은 유기농 차와 드립커피다. 커피는 어느 카페에 가서도 맛볼 수 있으니 기왕이면 차를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제주녹차, 제주호지차, 월광백 등 다양한 종류의 차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산화도가 낮으며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제주청차와 제주 황차 등은 이 집의 시그니처다. 거기에 고려시대 원나라의 상화병에서 유래한 막걸리로 발효해 만든 제주전통빵 상애떡을 곁들일 것.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 부담이 없다. 주문이 끝났다면 낡은 계단을 통해 2층 다다미방으로 향해보자. 마치 일본의 전통 카페에 와있는 느낌이 들고, 내부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창밖으로는 관덕정이 보이는데, 이 풍경을 눈에 담으며 따뜻한 차를 먹다 보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모두에게 여유로움과 휴식의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주인의 손 글씨처럼, 순아커피가 이 자리에 남아 오래오래, 더 많은 이의 추억에 자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순아커피
제주 제주시 관덕로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