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SA 만남

KOMSA 기획조정실 대외협력팀 송태한 팀장
KOMSA 보령지사 장상식 선박검사원
한배를 탔던 사이,
KOMSA에서 조우하다

때는 2007년. 송태한 팀장은 2등 항해사로, 장상식 선박검사원은 3등 항해사로 한배를 탔던 사이다. ‘배’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희로애락을 나누고, 추억을 쌓았다. 지금은 ‘KOMSA’라는 배에 탑승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함께 나눈 추억이 많아 더 반가운 두 사람이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글. 최선주 사진. 고인순, 정우철
보령지사
장상식 입사 시기 2014년 9월
나의 자랑 5글자로 말하면? 근면과 성실

맡은 일은 꼼꼼히, 제대로 하려고 하는 편



좌우명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해 배우고, 새로움을 얻자!



오랜만에 보는 동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잘 지내시죠? 자꾸 뭐 여쭤볼 때만 연락드려셔 죄송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기획조정실
송태한 입사 시기 2014년 2월
나의 자랑 5글자로 말하면? 소통과 진심

모든 사람과 소통을 좋아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 중



좌우명

Keep Calm and Carry on. 평정을 찾는 것이 제일 어렵지만, 모든 일에 동요하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가장 힘든 순간을 이겨 내는 좋은 방법!



오랜만에 보는 동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상식아~ 형이다~!! 자주 연락하고 살자~ 자주 보자~~!!


 

저와 장상식 선박검사원은 고향이
순천이에요. 동향 사람이라 유난히 형님,
동생하면서 잘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태한 네덜란드 유학을 다녀오고, 대학원 동기였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친구가 당시 우리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추천하더라고요. 평소 국제업무를 하고 싶었는데, 잘 맞을 것 같아 입사했습니다. 상식 승선 생활 중에 ‘선박검사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선박 안전을 위해 꼼꼼하게 검사에 임하는 걸 보면서, 나중에 저런 선박검사원이 되면 멋있겠다고 생각한 게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함께 승선했던 사이잖아요. 승선했을 때는 어떤 일을 했나요?

태한 저희는 2007년에 같이 STX 팬오션의 ‘뉴 마리너 호’에 승선했습니다. 저는 2등 항해사, 장상식 선박검사원은 3등 항해사였죠. 당시 그 선박은 뉴질랜드에서 원목을 싣거나, 설탕의 원료가 되는 원당(Raw Sugar)과 각종 곡물 등을 싣곤 했습니다. 당시 2등 항해사는 선박의 항해계획을 수립하는 업무와 선박 내외의 통신업무를 담당하고, 화물을 싣고 나르는 하역 업무를 감독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항해사는 매일 4시간씩 3교대로 근무가 이뤄지는데요. 저와 장상식 선박검사원은 맞교대를 하며 항해와 정박 당직 근무를 했어요.

함께 승선했을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태한 당시 승선했던 배의 선장님은 회사에서도 무섭기로 소문난 젊은 선장님이셨습니다. ‘공공의 적’이 있어서였는지, 매일 2등 항해사와 3등 항해사로 교대할 때마다 서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몇 시간씩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더 친해졌던 것 같아요. 물론 당직이 끝나고 빨리 내려가서 쉬어야 하는 장상식 선박검사원의 쉬는 시간을 뺏어가며 저의 한풀이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합니다. 상식 맞아요. 선장님이 정말 무섭기로 유명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것이 더 빠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장님을 겪으며 제 주변 사람들은 ‘정말 천사였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승선했을 때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태한 지금은 전쟁으로 더욱 가기 힘들어진 우크라이나도 가보고, 러시아의 무르만스크와 파타고니아로 유명한 칠레 남부의 마젤란 해협도 통과해 봤거든요. 여행으로 가보기 힘든 곳을 갈 수 있다는 점은 승선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별빛과 달빛이 가득한 잔잔한 태평양을 지나거나, 우연히 돌고래 떼를 만나는 등 소소한 즐거움도 있죠. 상식 일하는 곳과 생활하는 곳이 같아서 출퇴근이 무척 쉬웠습니다. 하하. 복장도 근무복, 작업복, 평상복만 있으면 됐어요. 또 1~3개월 장기간 쉴 수 있다는 것도 좋더라고요.

반대로 고충도 있었을 것 같아요.

태한 가족들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의 소식을 텍스트로만 받아보고, 1분에 2만 원이 넘어가던 위성 전화로 목소리를 듣거나, 외국 항구에 정박해서야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리고, 선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매일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은 저 같은 ‘E 성향’의 사람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어요. 겨울철의 북태평양과 대서양을 항해하는 일은 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이었고, 좌우 35도씩 흔들리는 배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자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상식 일하는 곳과 생활하는 곳이 동일하다 보니, 업무나 기타 인간관계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벗어나서 환기를 시킬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통신과 연락이 쉽지 않아서 연인들과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그 당시 느꼈던 동료의 본받을 점은 무엇인가요?

태한 장상식 선박검사원은 예나 지금이나 성실함과 근면의 상징입니다. 같이 승선했을 때도 본인이 맡았던 일들은 아주 꼼꼼하게 해내었고, 승선하던 중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며 본인의 식스팩을 자랑하던 멋진 동생입니다.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네요(웃음). 상식 송태한 팀장님과 함께 일하면서 남자는 악기는 하나 배워야 한다는 것과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송 팀장님은 2등 항해사 업무도 쉽게 하시고, 그 외에도 뭔가 새로운 것을 늘 공부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점이 참 새로웠습니다.

승선 중에도 늘 새로운 걸 찾아 공부하는
송태한 팀장님께 많이 배웠어요.

승선했을 때와 지금 업무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태한 공단에 연구직으로 처음 들어와서는 적응이 안 되기도 했습니다. 승선 때나, 일반회사에서 느끼지 못했던 공적인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저에게는 조금 낯설었죠.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적인 관계에서만 신경 쓰면 되었는데, 직장동료, 선후배 그리고 고객들까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게 가장 다르더라고요. 상식 수검자와 선박검사원의 입장이 바뀐 점이 가장 다른 것 같아요. 당시에는 검사에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지금은 선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현재 업무를 할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나요?

태한 세종은 다른 도시와 달리 별이 자주 보입니다. 특히 늦가을과 초겨울의 어둑어둑한 밤하늘의 별을 보면 적도를 지날 때의 밤하늘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많은 해기사분들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유튜브 등에 많이 올리더라고요. 그 콘텐츠들을 보면 승선 때의 좋았던 기억들이 많이 떠오르곤 합니다. 상식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들의 검사가 접수될 때가 있어요. 그때는 선박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이런 길을 캐리어를 끌고 지나갔었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승선해서 선기장님, 승조원들을 만나면 그때 기억이 더 또렷해지고요.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태한 업무적으로는 지금 맡고 있는 홍보업무를 더욱더 열심히 해서 공단 유튜브 채널 ‘실버 버튼 받기’가 시작된 해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해안선> 구독자님들의 구독, 좋아요, 댓글, 즐겨찾기는 공단과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업무 외적인 부분으로는 늘 주말에 피곤함을 이유로 잘 놀아주지 못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했던 것처럼 인근의 계룡산 정복에 도전하는 게 목표입니다. 상식 작년에 보령지사 고객만족도 점수가 하락했는데, 올해는 다시 상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업무 외적으로는 모두들 조금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