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재해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어선원의 안전과 보건 문제 또한 주목받고 있다. 2020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고를 계기로 산업재해 예방이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지만, 어선원의 노동환경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반복되는 어선 사고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서 수립해 추진 중인 ‘어선원 안전·보건 기본계획 (안)’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어선원의 안전을 국가적인 과제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정부 기조와 발맞춰 어선원 안전·보건 강화를 위한 네 가지 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어선원의 안전·보건 체계를 확립하고 현장에 자율적인 안전관리체계가 자리매김하도록 지원한다. 이를 위해 공단은 정부와 함께 안전기준 마련, 위험성 평가, 재래형 안전사고 예방 등을 중점 추진할 예정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근로환경을 조성하고 향후 국제협약 비준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해 어선원의 근무환경을 개선한다. 관련해 공단은 어선원 중대재해 사고 조사 지원 기반을 구축할 것이다.
어선업 관계자 간 협력을 강화하고 안전·보건 교육과 홍보를 통해 현장의 안전의식을 제고한다. 이는 공단의 ESG 경영 전략과도 연계돼 있다.
디지털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스마트 안전장비 개발 및 보급을 확대하고 디지털 기반의 어선원 안전·보건 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최근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고생 많으셨습니다’의 제주방언)’에는 금명이의 남동생 은명이가 사고를 치고 원양어선을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부모는 그를 뱃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한평생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온 부모였기에 더욱 절박한 장면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필자 또한 과거 공단 지사에서 선박검사원으로 근무하며 어업인의 일터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어업인들은 거센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생업의 닻을 올린다. 비좁은 갑판, 귀를 짓누르는 엔진 소음, 혹한에 손끝이 얼고 폭염에 숨이 막히는 기관실, 여기에 밤낮없는 조업과 부족한 휴식 시간까지. 이러한 열악한 작업 환경은 어선원의 안전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특히 어선업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일반 산업 대비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어선업에서 발생한 사망·실종 사고는 연평균 93.4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산업 평균보다 1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선원 안전·보건 관리체계는 여전히 미비하며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어선원의 조업재해 예방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법과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어선안전조업법’에 따라 올해부터 모든 어선에 대한 안전·보건관리 권한이 해양수산부로 일원화되었다. 이는 어선원의 산업재해 예방을 강화하고 보다 체계적인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다. 우리 공단은 해당 업무를 위탁받아 본격적으로 수행 중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제도 정비를 넘어 현장의 구조적 위험을 반영한 실질적 대응이기도 하다. 공단 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2024년) 5인 이상 어선에서 안전사고 발생 비율은 5인 미만 어선보다 약 7배나 많았고 안전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발생 비율은 4배 이상 높았다. 여기에 어업 업종별, 지역별 선적 어선들의 사고 편차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다. 공단 분석에 따르면 최근 2년간(2023~2024년) 근해어업의 사고 증가율과 인명피해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작년에는 선적지 기준 제주와 경북지역 어선의 척수 대비 사고율이 평균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 속에 ‘어선안전조업법’은 어선원 안전·보건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핵심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과 정책의 변화만으로는 실질적인 개선을 곧바로 기대하기 어렵다. 이를 현장에 적용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안전은 제도와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실현될 수 있다. 제도의 실효성, 예산·인력 확보의 지속성, 국가 정책 기조와의 정합성 모두를 고려해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 공단은 최근 ‘어선원 안전·보건 매뉴얼’ 30종을 전면 개편해 전국 어업 현장에 배부했다. 이번 개편은 ‘어선안전조업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따라 어업 현장 중심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어선이라는 작업장의 특성은 물론 근해채낚기, 근해자망 등 30개 업종별 위험 요소를 분석해 어업 맞춤형 매뉴얼로 구성했다. 고령 어업인과 외국인 선원을 위해 가독성도 높였다. 수협과 협력해 1,000부를 배부했고 공단 누리집에서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단은 ‘어선원 안전·보건 표지’ 11만부를 제작해 해수부, 수협과 함께 현장에 배부할 계획이다. ‘어선안전조업법’에 따른 의무 사항으로 어선원은 조업 어선에 △출입금지 등 금지 △끼임 주의 등 경고 △안전모 착용 등 지시 △구명조끼 등 안내 표지 스티커를 부착해야 한다. 또한 공단은 정책 이행의 핵심과제로 행정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카카오톡 기반 어선원 맞춤형 위험성 평가 플랫폼을 구축해 어선원이 손쉽게 안전·보건관리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어선원과 어선 소유자가 안전·보건 기준을 자율적으로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계도에 기반한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면서 안전설비 지원과 교육 확대, 인센티브 제공 등 유인책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어선원 사고 예방을 위해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이 시급하다. 위치추적이 가능한 스마트 구명조끼, 사고 감지 센서, 인공지능(AI) 기반 위험 예측 시스템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하면 어선원 사고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