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 해국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지붕들보다 훨씬 높은 긴 굴뚝이 하나 보인다. 굴뚝의 정체는 마을 사람들의 추억이 서린 목욕탕, 신천탕의 것이다. 아니 지금은 1925감포의 것이라고 해야 맞으려나. 둘 다 틀렸다. 진실은 감포, 이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목욕탕에서 카페이자 전시공간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1925감포의 문을 열었다.
1925감포의 옛 이름은 신천탕이다. 신천탕은 1920년대, 감포 지역 최초의 목욕탕이었다. 이후에 몇 개의 목욕탕이 생기긴 했지만, 신천탕은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유일무이한 목욕탕으로 자리한다. 누군가는 부모님과 함께 목욕탕에 들렀던 기억, 누군가는 한창 목욕탕 영업이 잘되던 시절, 목욕을 위해 줄을 서서 매표를 기다렸던 기억, 누군가는 뱃일을 마치고 이곳에서 꼭 목욕을 하고 돌아갔던 기억, 누군가는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는 벽이 뚫려있어 벽 위쪽으로 비누를 던지고 받았다는 기억···. 감포 토박이 주민들은 저마다 신천탕에 대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은, ‘신천탕이 사람을 살리는 목욕탕’이었다는 것이다. 마카모디 김미나 대표는 “옛날 잠수부들이 저체온증에 걸리면 신천탕에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신천탕에서 따뜻한 물로 체온을 올렸다고 해요. 그렇게 여러 사람을 살리는 곳이었죠”라며 마을 어르신들에게 들은 신천탕에 대한 추억을 전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던 신천탕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목욕탕이 필요 없어져서인지 문을 닫게 되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을까. 굳게 문이 닫혀 있던 신천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감포 지역에서 활동하는 로컬 콘텐츠 제작소 마카모디였다.
마카모디는 2021년, ‘기억을 담는 목욕탕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목욕탕의 문을 다시 열었다. 주민들과 청년들이 힘을 모아 공간 재생을 시작한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목욕탕이 담아온 이야기를 기록하며 공간을 재해석하고, 리뉴얼했다. 그렇게 모두의 힘을 모은 결과 2021년 10월, 신천탕은 1925감포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어요. 기존의 목욕탕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주민분들이 저희의 새로운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김미나 대표는 1925감포를 탄생시키는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의 어려움이 1925감포가 로컬 콘텐츠로 발전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1925감포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소중한 인연이 되어 지금의 마카모디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1925감포의 ‘1925’는 감포항의 개항 연도이다. 1925감포는 ‘사람과 이야기라는 배가 출발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곳에서 시작된 작은 파동이, 물결과 함께 널리 퍼져나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또한 로고에는 1925감포 정면의 작은 굴다리에서 따온 아치를 포인트로, 옛것(갈색)과 변화하는 것(형광 노랑)을 색으로 표현했다. 오래된 추억을 지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부표라테, 산내어서오곡, 감포비취 등 여러 음료를 파는 ‘카페’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곳이 추구하는 바는 마을의 앵커스토어(거점 공간)다. 마을 주민, 경주에 뜻을 품은 청년들, 여행자들이 오고 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입니다. 또한 새롭게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특별한 경험과 따뜻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감포라는 지역과 이곳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감포의 시간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고, 오늘날의 낭만을 새로이 담아내는 곳. 그리하여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곳, 1925감포의 문은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이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 감포안길 15-1
@1925gam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