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포는 꽤 낭만 있는 동네다. 풍랑주의보에도 어업인들은 조급함이 없다. 바다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찰나의 여유를 즐긴다.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때다 싶어 손질한 생선을 널어 해풍에 말린다. 이 모습을 보니 낭만이 별건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일과 행복을 찾아가면 그만인 거지. 그게 낭만이지!
감포는 ‘역사의 도시’로 익숙한 경주를 ‘바다의 도시’로 알려준 곳이기도 하다. 감포항, 오류고아라해변, 나정고운모래해변, 전촌항 등 동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이런 이유로 감포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경주에도 바다가 있었구나!’라며 놀라워한다고. 하지만, 감포에 한 번 와본 사람들은 조용하고 정겨운 감포의 모습을 못 잊어 몇 번씩 찾는다고 한다. 그만큼 감포는 감포만의 매력이 충분히 있는 곳이다.
감포를 처음 찾았다면, 망설이지 말고 ‘감포항’으로 향하는 것은 어떨까. 올해는 감포항이 개항 100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이기 때문이다. 감포항은 예로부터 수심이 깊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어족자원이 풍부하기로 소문이 났다. 1905년쯤에는 어업 전진기지로 명성을 얻으며 감포를 동해안 최대 어촌마을로 발전시켰다. 게다가 볼거리도 풍성하다. 항구 주변에는 조업을 위해 드나드는 고깃배들과 인근의 활어 위판장에서는 당일 조업한 신선한 해산물들이 경매로 오간다. 경매는 매일 5시 30분부터 7시 사이에 볼 수 있는데, 풍랑주의보와 같은 기상 이변이 있을 시에는 조업을 나가지 않거나, 조업을 나간 배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경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경매를 직관하고 싶다면 날씨가 좋은 날에 맞춰 가기를 바란다. 비릿한 향기를 뚫고 모인 마을주민, 경매사, 어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어판장의 경매를 눈에 담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감포항에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줄 ‘눈요깃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다방이다. ‘다방’이라고 하면 왜인지 안 좋은 인식을 갖곤 하는데, 감포의 다방은 그렇지 않다. 쉼터 혹은 안식처랄까. 새벽일을 마친 어업인들은 바닷바람에 지친 몸을 녹이고자 다방을 찾곤 한다고. 그런 이유로 감포항 인근에는 여러 다방이 많다. SNS에서 나오는 카페처럼 화려한 메뉴들은 없지만, 이곳에서 어업인들과 주민들은 계란 동동 띄운 쌍화차나, 믹스커피를 마시며 경매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고된 뱃일에 대한 회포를 풀기도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감포의 다방은 어업인의 이야기가 꽃피는 그야말로 ‘살롱(salon)’이 아닐까 싶다.
감포항은 산책하기도 좋다. 주변의 방파제를 따라 등대까지 걷다 보면, 자연스레 항구 주변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낚시를 하는 사람, 어망을 정리하는 어업인들까지. 동해안의 맑은 경치와 어우러지니 정겹기만 하다.
감포항 산책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코스가 있다. 바로 항구 옆에 자리한 수협활어직판장이다. 이곳은 소위 말해 감포항 수산시장과 다름없다. 광어, 대게, 개불 등 다양한 어종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구매하면 주인장들이 직접 손질해 주는 싱싱한 횟감을 맛볼 수도 있다.
봄에 감포 수협활어직판장을 찾았다면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가자미다. 가자미는 감포에서 봄에 유독 많이 잡히는 어종인데, 다른 지역의 가자미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고소한 맛이 깊어 유명해졌다. 그 덕분에 감포에서는 3월 말이면 가자미 축제가 열린다. 축제에서는 가자미로 만든 횟밥, 미역국, 식혜를 맛볼 수 있다.
한바탕 직판장 구경을 마쳤다면, 다시 산책에 나서보자. 멀리 보이는 송대말등대는 동해안 일출명소로도 사랑받는 곳이다.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이름처럼 소나무 숲속 감포바다 끝에 우뚝 솟아 있다. 그 앞에 서면 감포 바다와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송대말등대까지 갔다가 마을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보이는 풍경도 재밌다. 한 집 걸러 한 집 앞에 가자미나 멸치 등을 널어놓고 건조 시키는 모습이 ‘이곳이 어촌마을’이구나 실감케 한다. 그렇게 마을을 따라오다 보면 감포의 명소 ‘감포 해국길’을 만나게 된다.
감포 해국길은 ‘감포 깍지길’의 한 코스로 ‘제4구간-골목으로 접어드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벽화 거리다. 파란 담벼락에 새겨진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따라 걷다 보면, 해국길의 하이라이트 ‘해국계단’이 나온다. 감포 해국길은 원래도 감포의 상징이었는데, 최근 여러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여기서는 큰 해국이 그려진 계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게 포인트. 유난히 늦었던 봄, 이곳에서 해국을 만나니 어쩐지 더 반가운 기분이다.
봄날의 감포는 이렇게 걸어야 제맛이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마을 깊숙이 간직한 이야기를 천천히 걸으며 제대로 느껴야 아쉬움이 없다. 이 봄, 푸른 동해의 바람을 만끽하며 따뜻한 햇살을 맘껏 누리고 싶다면, 감포로 가보자. 작은 어촌마을의 낭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