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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옆 예술관

동쪽 바다를 그리는 나날들

이현정 작가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장소. 강릉 무명

이현정 작가는 자신을 ‘15년 차 강릉 여행자’라고 소개하곤 한다. 강릉에 터를 잡고 꽤 오랜 시간 살고 있지만, 아직도 여행하는 마음으로 강릉을 바라봐서라고. 그래서일까. 그녀가 그린 강릉 그리고 강원도의 바다는 늘 새롭고, 아름답다. 거창하고 화려한 모습이 아닐지라도, 동쪽 바다만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오랜 여행자의 시선으로 기어코 발견해 낸 것이다.

<논골담길> 2021, digital drawing 동해시 묵호항 논골담길. 오징어잡이로 삶을 꾸려온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바닷가와의 인연

포항이 고향이었던 그녀는 사실 바다에 대한 로망이 딱히 없었다. 너무 익숙해서였을까. 그녀에게는 사실 강릉도 마찬가지였다고. “강릉에 살기 전까지는 사실 매력을 잘 몰랐어요. 이사 오기 전까지도 딱히 기대감이 없었죠.”

이렇게 별 기대 없이 시작한 강릉 생활.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강릉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녀의 작품에 주 소재로 쓸 만큼 강릉의 풍경들을 사랑한다고. “제가 ‘15년 차 강릉 여행자’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요. 15년째 이곳에 살고 있지만, 가끔 강릉의 풍경들을 마주하면, 방금 여행 온 사람처럼 설레더라고요.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게 다가오는 곳도 많고요. 지내면 지낼수록 매력적인 곳입니다.”

늘 새롭게 다가오는 강릉의 풍경들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림에 담아내며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최근에는 강릉과 양양의 여러 기관과 협업을 하기도 했고, 한국만화박물관 기획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쪽 바다에서 만나다

그 시작은 2017년 즈음이었다. 육아로 10여 년간 그림 활동을 거의 못 하고 있다가 ‘2017 양양 연어축제’ 야외 전시를 계기로 다시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연어가 돋보이는 그녀의 작품 <남애항>은 그녀를 다시 그림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 그림으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다른 프로젝트와 연결이 되기도 했고요. 정말 운이 좋게 작년 롯데카드 모바일 앱 시작 화면에 이 그림이 쓰이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제게는 정말 의미 있고, 소중한 작품입니다. 또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요.”

올해 3~4월에는 한 달간, 원주에서 <동쪽 바다가 건네는 말>이라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강릉을 포함한 동쪽 바다를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며, 내륙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의 정취를 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단다.

“기존에 작업한 작품들을 ‘바다’라는 주제에 맞게 큐레이션 한 전시라, 다른 전시보다는 어렵지 않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이 전시를 보고 ‘강릉에 와보고 싶다’라고 방명록을 남겨주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바다 정취를 느낄 수 없는 도시에 사는 분들과 그림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이현정 작가는 주로 아이패드를 이용해 작업을 진행한다.

<다섯 개의 달_찻잔에 비친달> 2021, digital painting 경포대에 뜨는
다섯 개의 달 스토리를 그린 시리즈 중 하나. 원래는 술잔에 비친 달이지만,
커피 도시 강릉을 모티브로 찻잔에 비친 달로 바꾸었다.
여름날의 경포호는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강릉이 취향이라서요

그녀가 그리는 강릉 그리고 강원도의 풍경에는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릉의 바다, 카페, 오래된 동네, 골목….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어느 날, 제가 그린 동네의 집이 갑자기 사라진 걸 발견했을 때, 정말 슬프더라고요. ‘다시는 못 보는구나, 더 잘 그려 놓을걸’ 후회가 되기도 했고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동네 산책을 다니고, 그림도 많이 그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바쁜 엄마여서, 아내여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만큼은 포기할 수 없단다. 그만큼 강릉과 강원도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일에 진심인 그녀의 소신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쁘게 사느라 일상의 사소한 변화를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계절이 오고 가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요. 너무 서글프지 않나요? 가끔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며 우리를 기다려 주는 자연을 보면서 휴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에 담긴 풍경도 좋고요. 저도 누군가가 제 그림을 보며 쉼을 얻을 수 있도록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강릉의 풍경들을 꾸준히 그려나가려고요.”

그림 작업뿐만 아니라 강릉문화예술재단 연계 예술프로그램 개발, 클래스 진행, 신간 출간 등. 앞으로도 이루고 싶은 계획들이 많아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그녀의 강릉 여행은 더 다채로워질 예정이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들꽃처럼, 그녀가 오래 머물고 바라보고, 담아내는 강릉의 면면들이 어쩐지 더 기대가 된다.

<남애항> 2017, digital painting 동해안의 미항 중 하나인 양양의 남애항. 남애항 주변의 빨간 지붕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양양의 남대천으로 가을에 회귀하는 연어들을 남애항에 드나드는 배로 표현하였다.

<남대천_안식처> 2022, digital painting 고향 집에 가면 엄마의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엄마의 체취와 엄마의 화장품 그리고 엄마가 쓰는 섬유유연제와 자주 하는 음식 냄새들과 엄마를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한꺼번에 뒤엉켜 화학 반응하여 만들어 낸, 이 세상에 하나뿐인 그리움의 향이다. 이 그리움의 향이 채워지면 작가에겐 비로소 안식이 찾아온다.

그녀의 작업과 수업이 이루어지는 강릉 카페 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