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사람

지키고 싶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박정례 감독

박정례 감독의 연출작은 어떠한 장르더라도 그 중심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또한 그렇다. 7인의 삶을 조명하며, 지키고 싶어지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7명의 목격자, 7개의 바다

스페인 미셸 앙드레 해양음향학자

평생 바다의 소리에 귀 기울여왔다. 대형 선박의 경적으로 위협받는 생명들을 목격하며, 바다의 위기를 기술과 과학으로 감지하고 해석한다.

인도네시아 무하마드 루시판 어부

기후위기로 마을이 바다에 잠겼다. 농부였던 그는 어부로서 다시 생을 이어간다. 묵묵히 물에 잠겨가는 집을 다시 높인다.

멕시코 후디스 카스트로 루세로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죽어가는 바다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바다가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활동한다.

한국 이유정 해녀

물질은 그에게 언제나 행복한 일이었다. 바닷속 폐그물에 발이 걸려 꼼짝 못하게 되기 전까지. 그후 바다를 살릴 수 있다면 작은 일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행동한다.

호주 다니엘 니콜슨 사진 작가

프리다이빙을 하며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바다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전한다.

핀란드 라우라 멜러 그린피스 해양 정책 자문위원

몇 달씩 집을 떠나 바다로 나가며, 우리가 바다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증명한다.

멕시코 호세 솔리스(가명) 어부

현지 마피아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다를 지킨다.

Q.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는 어떤 영화인가요?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접해온 환경 다큐멘터리의 문법과는 다른 길을 걷는 작품입니다. 바다를 분석하고 통제하기보다, 바다와 그 안의 생명들이 온몸으로 공명해 오는 신호를 전하는 ‘감정의 다리’ 역할을 자처합니다. 우리는 흔히 환경 문제마저도 인간의 위기, 피해, 생존 같은 단어를 빌려 철저히 인간 중심의 시선으로만 해석해 왔습니다. 이 영화는 시선을 조금 옆으로 틀어, 바다를 가만히 지켜보고 느끼며 곁에 머물러보는 공존의 경험 자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Q. 바다의 이야기를 다루신 계기가 있을까요.

오랜 시간 뜻을 함께해 온 ‘보더레스랩’ 이승윤 대표와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의 제안이 시작이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다큐’를 만들어보자며 해양 환경 문제를 제안하셨는데, 처음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바다의 위기는 이미 미디어를 통해 자주 언급되어 왔기에, 과연 이 주제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앞섰습니다. 그러던 중,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득 삼킨 채 죽어버린 바다 생물의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정작 저를 소름 끼치게 만든 건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무감각하게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너무 자주 보고 많이 들어 더 이상 신호로 느끼지 못하는 지점, 즉 마비된 감각이 프로젝트의 진짜 시작점이었습니다.
만약 관객의 무뎌진 감각을 다시 일깨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겠다고 믿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바다의 문제를 데이터로 근거하기보다 인간의 삶을 조명하며 풀어내셨습니다.

정보는 머리에 닿지만, 사람은 가슴에 닿는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연출을 선택했습니다. 숫자는 위기를 냉철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감정만이 그 위기를 여실히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일곱 주인공은 바다의 신호를 직접 겪고, 각자의 방식으로 응답합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해양 이슈들이 구체적인 삶을 통해 드러날 때, 관객은 비로소 그것을 가슴 깊이 체감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다를 지키는 것은 거창한 시스템이나 데이터가 아니라, 바다의 신호를 듣고 각자의 자리에서 응답하는 사람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Q. 제작 중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영화를 접한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오염 현장 대신,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가 담겨 있어 의아하면서도 신선했다고요. 제작진은 전 세계 각지의 바다가 가진 고유한 컬러와 물결, 빛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사투했습니다. 특히 바다 깊은 곳, 다양한 생물들의 삶을 포착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였습니다. 단순히 시청각적 즐거움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고래의 신비로운 울음소리, 기후 위기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내뿜는 산호초. 이 모든 것이 바다가 우리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였기 때문입니다. 극장의 서라운드 환경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바다 생물들의 미세한 움직임과 울음소리를 세밀하게 설계하고, 일부 시퀀스에서는 내레이션을 덜어내 사운드와 음악만으로 관객이 스스로 바다의 감정을 해석할 여백을 남겼습니다.
망가진 바다를 보며 느끼는 공포나 죄책감보다, 바다의 경이로움을 목격했을 때 솟아나는 ‘지키고 싶다’라는 열망이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Q. 영화 제작 중 현지의 위협이 있었다고요. 어떻게 대처하시고 진행하셨나요.

멕시코 산펠리페 촬영 당시, 멸종 위기인 바키타 돌고래를 지키려는 어부 호세 솔리스는 실제로 지역 마피아의 위협을 받는 긴박한 상황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현장에서는 연출자의 계획보다 출연진과의 신뢰와 안전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어떻게 찍을 것인가’보다 ‘왜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그들과 끊임없이 공유하며 마음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Q. 제작 과정 중, 잊지 못할 순간도 있을까요.

각국의 로케이션 촬영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편집 과정이 저에게는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7~8개월에 걸친 편집은 어떤 현장보다도 깊고 지속적으로 경고를 체감하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 루시판의 에피소드가 그랬습니다. 촬영 당시, 우리가 루시판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아내를 떠나보낸 다음 날이었습니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그는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며 촬영에 응해주었습니다. 저는 편집 중 그를 마주할 때마다 여러 번 멈춰 섰습니다. 화면 속 그는 표정도 감정도 쉽게 읽히지 않았거든요. 직업을 바꾸고, 물에 잠겨가는 집을 묵묵히 높이는 그의 모습은 분노나 절규보다도 더 본능적인 절박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환경문제가 결국 ‘생존의 문제’임을 새삼 실감했고,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무너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지는가를 체감했습니다.

Q.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로 남길 바라시나요.

머리로 알기 전에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익숙한 것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감상 후 ‘바다를 지켜야 한다’라는 당위보다 ‘저 소중한 존재들을 끝내 잃고 싶지 않다’, ‘지키고 싶다’라는 마음이 남는다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작은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바다에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Q. 환경 위기를 마주한 지금, 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거창한 구호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감각하고 응답하는 태도입니다. 작은 관심이 모여 지구를 바꾸는 출발점이 됩니다. 특히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는 그린피스가 3,000여 명의 시민 후원자와 함께한 프로젝트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영화의 가치를 더했습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영화 <1987>의 대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환경 위기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닮아 있습니다. 그 막막한 벽 앞에서 라우라 멜러는 달랐습니다. 그는 그린피스의 해양 정책 자문위원으로, 처참한 바다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해 왔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 환경이 얼마나 회복 불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내내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끝까지 행동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희망이었습니다. 긍정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것, 그리고 바다의 신호에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응답을 하는 것. 그것이 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가 잊고 있던 바다와의 연결감을 회복하는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Q. 감독님의 추후 활동 방향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은 제 연출 인생에서 분명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관객이 보고 싶어 할 이야기’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이야기가 필요로 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바다는 하나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사라져가는 것들, 들리지 않는 존재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환경이라는 주제는 저에게 거대한 이슈라기보다 ‘잊힌 일상의 목소리’에 가깝습니다. 앞으로도 그 작은 목소리들을 따라가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박정례 감독

2023 영화 <봉태리>
2022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초청 <봉태리>
2019 웹드라마
2018 KBS 평창올림픽 특집 다큐멘터리 <드림걸즈>
2017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