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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향토 음식 명인 부정숙 “제주의 제철 식재료가
간직한 깊은 맛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바다가 유독 맑고, 자연이 아름다운 제주. 부정숙 명인은 제주 토박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제주의 문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해녀였던 할머니 덕분에 제주 바다에서 난 해산물의 참맛을 일찍이 깨달았다. 동생들을 먹이고, 돌보는 게 당연했던 그 시절, 장녀로서의 사명감이 자연스럽게 요리를 시작하게 했다.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말하는 걸까. 제주와 요리를 손에 놓지 않으며,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그녀는 이제 제주 향토 음식 명인으로서 제주 음식에 담긴 맛과 이야기를 온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Q.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요리를 시작한 건 어릴 때부터였어요. 할머니는 해녀셨고, 부모님께서는 농사를 지으셨는데요. K-장녀로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도우며 동생들을 씻기고, 먹이는 일을 자연스럽게 맡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잡아 온 해산물로 국을 끓이고, 조림을 만드는 것은 일상이었어요. 성장한 뒤에도 유난히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요리 배우는 걸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걸 좋아했고요. 그러다 대학에 조리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38세에 다시 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요리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배움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는지 몰라요.

Q. 요리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언제였나요?

요리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었던 순간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던 때였어요. 함께 조리경연대회에 나가 학생들이 좋은 상을 받을 때마다 제 일처럼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강의실 복도에 학생들이 받아온 상장을 하나씩 붙여 나가며 그들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 큰 행복이자 보람이었죠.

Q. 제주만의 독특한 조리 문화 혹은 방식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특징은 제철 음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에요. 제주에서는 제철에 나는 식재료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양념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단순한 조리법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제주 음식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함께 먹고 나누는 문화’입니다. 제주에는 예로부터 음식을 혼자 먹기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어요. 특히 돼지고기는 제주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음식이라 큰 행사에는 빠지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를 삶아 수육으로 나누어 먹고, 그 국물로 몸국(모자반국)이나 고사리 육개장을 끓이는데, 이런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큰 잔치가 있다’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추렴하여 고기를 나누고, 그 고기로 적갈(산적)을 만들어 혼자 사시는 어른이나 명절·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에 나누어 드리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어요. 이렇게 함께 만들고, 나누는 조리 방식과 식문화는 제주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옥돔죽

문어적갈

갈치호박국

옥돔국

제주 식재료의 진짜 가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그 맛과 이야기를
오래도록 지켜내는 것입니다.

Q. 제주 향토 음식 중에 선생님만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저는 옥돔국을 제일 좋아해요. 겨울이면 옥돔이 유난히 맛있어지는데, 예전에는 명절이나 제사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거든요. 지금도 싱싱한 옥돔을 보면 꼭 사게 되고, 맑은 국으로 끓여 먹습니다. 옥돔은 20분 정도만 끓여도 뽀얗고 깊은 맛의 국물이 우러나요. 미역이나 무를 넣어 끓이기도 하죠. 다른 반찬이 없어도 옥돔국 한 그릇이면 아주 든든하고 만족스러워요. 그래서 옥돔국은 제게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소울푸드입니다.

Q. 제주 향토 음식 명인으로 선정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6년 만에 다시 제주 향토 음식 명인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책임감이었어요. 학교를 조기 퇴직한 이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와 일반인들에게 제주 향토 음식을 교육하는 일에 집중해 왔고, 제주 지역 방송을 통해 제주의 식재료와 향토 음식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주 음식의 깊이에 더 빠져들게 되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단순히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제주 향토 음식에 담긴 이야기와 정신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고 알리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명인 선정은 제게 앞으로 더 깊이 연구하고, 더 널리 알리라는 사명처럼 느껴져요. 제주 음식이 가진 가치와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Q. 제주의 독특한 조리 문화 중에서 선생님께서 꼭 지키고자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철 재료의 맛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단순함과 함께 나누어 먹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제주 음식은 화려한 양념이나 기교보다, 그 시기에 나는 재료가 가진 힘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거든요. 제철 식재료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다루고, 불필요한 것을 더하지 않으면서 재료의 본래 맛을 되살리는 이 조리 철학은 제주 음식의 핵심이자, 제가 꼭 지키고 싶은 가치입니다.

Q. 해녀들의 구술로 전해지는 해녀음식문화를 이어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해녀들의 구술로 전해 내려오는 음식문화 중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이어받은 음식은 전복의 내장을 이용한 ‘게웃젓’입니다. 전복 내장을 이렇게 요긴하게 활용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제주가 거의 유일할 만큼 독특한 향토 음식이거든요.
특히 해녀분들이 “전복죽을 끓일 때나, 게웃젓을 담을 때 성게 한 숟가락을 꼭 넣어라”고 강조하셨어요. 해녀분들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인데, 전복의 내장으로 만든 게웃젓에 성게를 조금만 더해도 맛이 훨씬 깊어지고 풍미가 살아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전복게웃젓을 만들 때는 반드시 성게를 넣습니다. 그러면 전복게웃젓의 풍미가 살아나고, 귀한 성게가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해내죠.
제주 바다의 홍해삼은 빛깔도 곱고 맛도 뛰어납니다. 다만 회로 먹으면 특유의 단단한 식감 때문에 그 풍미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제주의 전통 조리법인 토렴을 이용해 홍해삼을 부드럽게 만들어 드셨어요. 토렴하면 홍해삼 특유의 깊은 향이 살아나고 식감이 부드러워져서 그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세심한 조리법과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지혜가 바로 제주 해녀 음식문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제주 바다에서 난 좋아하는 식재료는 무엇인가요?

제주 바다에서 나는 생선들을 두루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옥돔을 가장 좋아합니다. 서귀포가 고향이라 옥돔을 접할 기회가 많았거든요. 옥돔으로는 무엇을 해도 맛있어요. 제주 월동무를 넣어 국을 끓이면 시원함과 감칠맛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고, 말린 옥돔으로 어죽을 끓이면 뽀얗게 우러난 국물과 쌀에 밴 감칠맛에 아픈 몸도 회복되는 것 같아요.
갈치도 어릴 때부터 먹어온 생선이라 특별해요. 늙은 호박을 넣어 끓인 갈칫국은 달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나고, 갈치살을 발라 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특히 갈치 맛이 배어든 호박 한 조각은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게를 정말 좋아합니다. 제주에는 보라성게가 많이 나는데, 해녀였던 할머니가 예전엔 성게를 한 망사리씩 잡아 오시곤 했거든요. 마당에 펼쳐놓고 바로 쪼개 주시면 제가 숟가락으로 퍼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Q. 앞으로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요.

제주 식재료의 진짜 가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그 맛과 이야기를 오래도록 지켜내는 것입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재료들은 그 자체로 제주의 자연과 삶을 품고 있어요. 저는 그 재료들을 가장 제주답게, 가장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음식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또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주 음식은 기술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제철 식재료를 존중하고,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제주만의 따뜻한 문화를 이해한다면, 그 자체로 반은 배운 거예요. 조급해하지 말고, 재료의 맛을 느끼는 법부터 차근차근 익히길 바랍니다.

제주 향토 음식 명인 부정숙
부정숙 명인은 해녀들의 구술로 전해 내려온 지역별 해녀 음식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레시피를 개발·보급해 온 제주 향토 음식 연구자다.
제주문화포럼 원장으로서 제주 향토 식재료와 음식 인문학 강의를 통해 제주의 고유한 음식 문화와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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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c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