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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가 전하는

오름과 내림의 위로

우리의 삶이 생각했던 대로 늘 곧은 길로만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살다 보면 바람과는 다르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소매물도는 오름과 내림의 순간도 그저 잠시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면 잠시 쉬었다가, 그러다 괜찮아지면 다시 걷다가, 내리막길을 만날 땐 속도를 낮춰 조금 천천히 가면 된다고.

Text. 임혜경   Photo. 정우철

통영의 아름다운 섬, 소매물도

통영은 그 자체로도 먹거리,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게다가 주변에 가볼 만한 섬도 많다. 고등어회로 유명한 욕지도, 이순신 장군의 혼을 느낄 수 있는 한산도, 하얀 백사장이 아름다운 비진도, 해안 암벽과 트래킹 코스가 있는 매물도, 등산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사량도….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버거울 만큼 아름다운 섬에 배를 타고 적게는 10분, 많게는 1~2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한 번쯤은 들어봤던 이름의 이 섬들이 전부 통영에 있었다니! 앞으로 몇 번은 더 와도 지겹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은 매서운 추위가 없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소매물도로 정했다. 배를 타는 시간도 1시간 내외라서 부담이 없었기에.

소매물도에 가는 방법은 2가지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가는 방법, 거제 저구항에서 가는 방법이다. 통영에서 출발하면 1시간 30분, 거제 저구항에서 출발하면 5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소매물도는 위치상으로는 통영에 속해있지만, 거리상으로는 거제도와 가까워 여행 일정이 짧은 경우 대부분 거제 저구항에서 출발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통영과 거제도는 사실 위치상으로도 멀지 않으니 여행 동선에 따라 알맞은 곳에서 출발하면 좋을 듯싶다.

망태봉에서 내려다본 등대섬

대부분 소매물도를 목적지로 두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등대섬을 필수 코스로
둔다. 물때를 잘 맞춰서 오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를 이어주는 70m 길이의
몽돌길, 열목개를 통해 등대섬에
갈 수 있기 때문.

거제 저구항에서 출발하는 소매물도행 선박

걸어서 등대섬까지

일정상 빠르게 움직여야 했기에 거제 저구항에서 소매물도로 향하는 배를 탔다. 일기예보로는 날씨가 화창하고 맑았던 터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갑자기 웬 변덕인지. 배를 타려고 하는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가 세차게 내리지 않아서 배가 뜨지 못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1시간 남짓 흘렀을까. 대매물도를 지나 소매물도에 도착한다는 선장님의 안내를 듣고 내릴 채비를 했다. 소매물도 항구에 다다르자 배를 타고 거제로 돌아가려는 사람들과 여러 펜션, 경사가 가파른 골목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려했던 비도 여행을 응원해 주려는 마음이 들었는지 그쳤다.

대부분 소매물도를 목적지로 두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등대섬을 필수 코스로 둔다. 물때를 잘 맞춰서 오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를 이어주는 70m 길이의 몽돌길, 열목개를 통해 등대섬에 갈 수 있기 때문.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등대섬까지는 갈 수가 없다. 그저 망태봉 먼발치에서 등대섬을 바라보는 수밖에. 물때를 잘 맞췄기에 ‘등대섬을 꼭 봐야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걸었다.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있는 길을 만나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소매물도의 핵심, 등대섬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공룡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한 공룡바위

물때를 맞춰야만 만날 수 있는 열목개

자연의 신비로움에 반하다

오르고, 걷고, 쉬고를 반복하니 어느덧 중간 지점에 도달했다. 마을만 보일 때는 몰랐는데,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다다르니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어 한참을 쉬었다. 그러면서 바다 위를 누비는 새와 본섬을 기준으로 보이는 촛대바위, 공룡바위, 부처바위 등 오롯이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도 잊어버릴 만큼 소매물도의 자연이 선사하는 황홀한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눈에 담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더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에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을 오르고 다시 또 내려가고, 걷고. 드디어 사진 속에서만 보던 열목개의 모습을 마주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고, 그 위를 걸어갈 수 있다니! 짜릿한 마음으로 열목개를 따라 등대섬 쪽으로 걸었다. 아무래도 몽돌로 이루어진 길이기 때문에 속도를 빨리 낼 수는 없었다. 다른 여행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조심조심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열목개의 풍경에 매료되어 열목개 바위를 쉼터 삼아 자리를 잡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느린 걸음인지라 등대섬까지 또 한참을 가야 하니 열목개는 지나는 것으로 만족했다. 물때가 곧 끝난다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

열목개를 지나 드디어 발이 등대섬에 닿았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옆으로 봐도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어우러진 드넓은 바다가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왔다고 반겨주는 듯했다. 물때만 아니었다면 더 머무르고 싶었을 만큼. 소매물도는 크게 보면 본섬과 등대섬이 전부다. 누군가는 단순하고 볼 게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섬에서부터 등대섬까지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면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이 빚어낸 소매물도의 깊이와 바다가 전하는 계절의 온도를 느낀 것만큼 훌륭한 선물은 없었으니까.

소매물도 여행 인증샷의 주인공, 등대

바다를 품은 해안절벽이 곳곳에 자리한 소매물도

Info

•‌ 거제 저구항에서 출발하면 조금 더 빨리 소매물도에 도착할 수 있다.

•‌ 소매물도의 핵심인 등대섬에 가려면 물때를 미리 알아보길 권한다.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에서 ‘바다갈라짐 예보’를 확인할 것